장수사과는
월등한 신선도와 높은 당도를 자랑합니다.
농가 친환경 시스템 구축으로
환경오염 최소화에 기여하고 지속 가능한 농업실현과
소비자가 믿고 찾는
안전 농산물 생산,
토양 및 식물체 분석진단장비 확보됨에 따라
농가별
적정시비체계를 확립하고 고품질 생산을
하여
소득이 향상 되었습니다.
산좋고 물 맑은 전북 장수지역은 세계적인 사과적지
고온량지수 87지역입니다.
지역적인 특성을 살려 열심히 노력하여 환상적인 사과로 장수사과의
차별화를 높여갑니다.
장수사과의 역사
1906년장수군 계남면 하관빈씨 실생묘 최초도입으로 재배가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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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
이태리 수입묘 이용 저수고밀식재배 시험사업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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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
1997년 가을에 장수사과시험포에 과원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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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
장수사과영농조합법인 M.9자근대묘 생산 시범사업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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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M.9계통 대목도입 자근묘 생산 시작 / 송재득씨등이 장수에 전입하여 M.26대목 이용 밀식재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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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
장수군 계남면 화양리 유인석씨 M.26대목 이용 밀식재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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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
장수군 계남면 화음리 유인형씨 MM.106대묘목 도입 재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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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
장수군 계남면 하관빈씨 실생묘 최초도입 재배시작 "국광”
한국사과의 역사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재래종 사과인"능금"을 재배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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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
M.9 자근묘에 의한 수관완성묘 생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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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
국내 육성 품종인 "暑光" 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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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
"대구사과연구소"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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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국내 육성 품종인 "紅露"" 秋光" "甘紅" "華紅" 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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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
왜성사과 보급 우리나라 사과재배의 전환점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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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
"원예시험장" 설립 과수연구를 본격적으로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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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
뚝섬에 원예모범장 설치 - 각종 과수의 개량품종 도입하여 품종비교 및 재배시험 수행함과 동시에 모범재배와
육묘도 실시 "과수재배의 국가적 기초 확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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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
윤병수씨 미국 선교사를 통하여 다량의 사과묘목을 들여와 원산부근에 과수원을 조성 좋은 성과를 거둠 "國光",
"紅玉" 도입 "경제적 재배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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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
외국 선교사들에 의한 개량사과 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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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6
홍만선의 "山林經濟"에 사과재배법 기록 사과는 이조 중기 효종때 중국에서 전래되었다는 기록도 있으나 개량된 사과가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역사가 그리 깊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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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3
우리나라에서는 예로 부터 재래종 사과인 "능금"을 재배해 옴 " 계림유사"에 의하면 고려중엽에는 '林擒'으로 표기
원산지와 내력
사과나무의 원산지는 발칸반도로 알려져 있다.
이 원생종은 두 방향으로 진화되었는데 중국 서부와 시베리아를 거쳐 우리나라까지 분포된
M.asiatica계와 서쪽으로 유럽 남동부인 코카사스, 터키에서 2차 중심지를 형성한 M.sieversii가
그것이다.
이 계통은 유럽 전역으로 퍼져 유럽 자생종인 M. pumila계로 분화하였고 이것에 육종적노력이
가해져서
오늘날의 서양 사과인 M. domestica로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BC 20세기경의 스위스
토굴 주거지에서
탄화된 사과가 발굴된 것으로 보아 서양사과는 4,000년 이상의 재배 역사를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스 시대에는 재배종, 야생종을 구분한 기록이 있고 접목 번식법이
이미 소개되어 있을
정도로
재배 기술이 진보되었다.
로마시대에는 Malus 또는 Malum이란 명칭으로 재배가 성행하였고 그 후 16-17 세기에 걸쳐
유럽각지에
전파되었다.
17세기에는 미국에 전파되었고 19세기 초까지는 영국이 세계 최대
생산국이었으나 19세기말에
들어서는 미국에서 육종이 성행하여 최대의 생산국이 되었으며
20세기에는 칠레 등 남미 각국에 전파되었으며
현재는 러시아가 세계 최대
생산국이다.
일본에는 1864년 명치 개척사가 미국에서 국광, 홍옥 등의 품종을 도입하여 재배를 시도하였고,
우리 나라는 1906년 일본으로부터 재차 국광, 홍옥을 도입하였다.
국내재배사
사과에 대한 우리나라 최초 기록
고려의종(1083~1105)때
계림유사(1103)에서
M.asiatica를
임금으로 기술한데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임금이 지금 능금의 어원이며,홍만선 저 산림경제에는 내금으로
표기되어 있고
재배기술이 서술된 것으로 보아
18세기 초에 재배가
성행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현재의 사과인 M. domestica에 대해서는 조선 인조의 셋째 아들인
인평대군
(1622 - 1658)이
중국에서 가져왔다는
기록을 남강만록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서양 사과는 재배화되지 못하였고 그 후 1884년 외국 선교사 등에 의해 재차
도입되어
인천 영사관 구내와
원산 근교 에서 재배를 시도한 적이 있었으나 상업적인
과수원 조성에는
역시 실패하였습니다.
그 후 1901년 원산 근교의 윤병수씨가 외국 선교사를 통해 국광, 홍옥 등의 묘목을 도입,
1906년 구한국정부에서 뚝섬에 12ha 규모의 원예모범장을 설치하고 각국에서 도입한
사과 품종을
비교 재배
시험 등을 실시하는 한편, 육묘도 동시에 실시 하면서 사과 재배의
국가적 기초를
확립하였고 우리 나라 기후,
풍토에 사과 재배가 매우 유망하다는
것이
일반에게 인식 되기 시작하자
사과 재배 면적이 급속도로 확대되어
지금은 낙엽 과수중
가장 널리 재배되고
있습니다.